「대화 기록은 계좌를 사기 조직에 쓰게 할 고의가 없었다는 것만 증명할 뿐, 곧바로 과실도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불기소된 계좌 명의인에게 배상을 명한 신베이지방법원 항소부 판결문의 한 대목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같은 불기소였는데 결론이 달랐던 사람도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유학생은 2022년 3월, 편의점 택배로 우체국 현금카드를 부쳤습니다. 집에서 하는 포장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중이었고, '회사'는 재료를 실명으로 사야 하니 카드와 비밀번호를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계좌에 돈이 없어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달 29일 저녁, 학생이 모르는 사람이 이 계좌로 세 번 돈을 보냈습니다. 몇 분간 인출이 이어졌습니다(판결).
검찰은 학생을 불기소했습니다. 그래도 민사 청구는 왔습니다. 피해자는 한 형사사건의 2심 절차에서 부대민사소송을 내며, 인출책 등과 함께 이 학생에게도 50만 대만달러를 연대하여 배상하라고 했습니다(타이난분원 판결).
계좌를 넘겼을 뿐 아무도 속이지 않았고 기소도 되지 않았다면, 피해자에게 돈을 물어 주어야 할까요? 2024~2025년의 판결 네 건은 답이 달랐습니다. 갈린 곳은 명의인 자신의 사정이었습니다.
불기소 처분이 답하지 않는 질문
대만 민법 제184조 제1항 앞부분은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의 권리를 불법하게 침해한 사람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웁니다. 직접 속이지 않은 명의인에게 피해자는 제185조도 함께 듭니다. 같은 조 제1항은 여럿이 함께 타인의 권리를 불법하게 침해하면 연대하여 배상하게 하고, 제2항은 교사한 사람과 방조한 사람(幫助人)을 공동행위자로 봅니다. 연대 책임이 되면 피해자는 책임 있는 사람 중 한 명, 여러 명 또는 전원에게 동시에 또는 차례로 전부나 일부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제273조 제1항).
방조자로 묶이려면 그 사람에게도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하고, 그 행위와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신베이지방법원 항소부는 2025년 5월 20일 판결에서 이렇게 짚고, 불법행위의 과실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게을리했는지로 판단하며 추상적 경과실만으로도 성립한다고 했습니다. 그 사건의 불기소는 고의가 없다는 판단이었고, 항소부는 과실을 따로 따졌습니다.
증명할 사람은 피해자입니다. 대만고등법원 타이난분원도 학생 사건에서,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람이 그 성립 요건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판결).
형사소송법 제487조 제1항은 범죄로 손해를 입은 사람이 형사소송 절차에서 피고인과 민법상 배상책임자를 상대로 부대민사소송을 낼 수 있게 합니다. 학생은 형사 절차에서 공동불법행위자로 인정된 사람이 아니어서 이 요건에 맞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민사부로 넘어간 뒤 피해자가 재판비용(裁判費)을 내어 그 흠을 보완했습니다(타이난분원 판결).
계좌 제공의 형사책임은 별개의 문제이고, 계좌가 묶였을 때의 사정은 경고계좌에서, 피해자 쪽 부대민사소송은 사기 피해와 부대민사소송에서 다루었습니다.
같은 불기소, 갈린 민사 판결
대만고등법원 타이난분원은 2024년 5월 29일 학생에 대한 청구를 기각했습니다(112년도 金簡易字 제108호 판결). 법원은 '회사'와 나눈 대화 기록을 보고, 학생도 이용당한 피해자라며 고의를 부정했습니다. 과실 부분은 꽤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학생은 대만에 온 지 2년 남짓이었지만 직장 생활 없이 학교에서 지내 사회 경험과 판단력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외국인이라 대만의 법과 사회 현실, 구직 함정, 사기 수법도 잘 몰랐습니다. 법원은 이런 학생에게 대만의 일반 성인과 같은 카드 보관상의 주의의무를 요구하기 어렵다며 과실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학생은 속은 것을 안 뒤 경찰에 신고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지방법원 2심인 신베이지방법원 항소부의 결론은 반대였습니다(판결). 명의인은 데이트 앱에서 알게 된 외국인 여성과 반년쯤 연락했지만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파견된 군인이라 급여를 받을 계좌가 필요하다는 말에, 명의인은 2020년 9월 새로 만든 계좌의 카드를 부치고 비밀번호와 인터넷뱅킹 정보를 앱으로 보냈습니다. 검찰은 다른 피해자들 사건에서 명의인을 불기소했고, 1심도 명의인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항소부는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명의인은 석사 학위가 있었고, 물류 일을 했으며 창업 경험도 있었습니다. 합리적으로 확인하지 않았거나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계좌를 함부로 넘기지 말라는 정부와 언론의 홍보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복무하는 군인의 급여를 대만달러 보통예금 계좌로 받는다는 이유부터 이상했습니다. 명의인은 상대의 신원과 사용 이유를 확인하지 않았고, 넘긴 뒤 카드를 돌려받거나 분실 신고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법원은 10만 대만달러와 이자를 배상하라고 했습니다.
역시 지방법원 2심인 타이베이지방법원 항소부는 2025년 7월 2일 계좌 제공자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판결). 이 사람은 주택 대출용으로 만든 아버지 명의 계좌를 관리하다가,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인터넷뱅킹 정보를 건넸습니다. 상대는 아들이 아프고 태국 사업이 어려워 직원 급여를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제공자는 처음에 사기가 아닌지 걱정을 내비쳤고, 경찰 조사를 받은 뒤에는 돈의 출처를 여러 번 따져 물었습니다. 법원은 계좌 정보를 넘기면 남에게 재산 손해가 생길 수 있음을 제공자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을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에서 대가 없이 빌려준 경우였고, 제공자 자신도 속은 사람이었습니다. 고의도 과실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법원이 하나씩 짚은 것은 나이와 학력, 경력, 대만에서 지낸 기간과 환경, 부탁이 그럴듯했는지, 무엇을 확인했는지, 이상한 낌새에 어떻게 반응했는지였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사정을 따진 것은 네 판결 중 타이난분원뿐이고, 그것도 학생의 캠퍼스 생활과 묶어서 판단했습니다. 채팅 기록은 타이베이 사건에서는 의심하고 추궁한 흔적이 됐고, 신베이 사건에서는 확인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됐습니다.
다른 계좌로 들어간 돈까지 책임지는가
나머지 피고들에 대해서는 타이난분원이 2024년 6월 26일 따로 판결했습니다(판결). 다른 계좌를 제공한 성인 명의인은 이 일로 자금세탁방조죄 유죄가 확정됐고, 사기 전과가 있었으며, 계좌가 손을 떠난 경위에 대한 설명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법원은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고 민법 제185조 제2항에 따라 이 명의인을 공동행위자로 보아 인출책과 연대하여 배상하게 했습니다. 범위는 좁았습니다. 그 계좌에 들어온 28,985대만달러뿐이었습니다. 학생 계좌로 들어간 149,967대만달러는 이 명의인이 알고 도왔다는 증거가 없다며 제외했습니다. 인출책은 피해액 전부를 배상하게 됐고, 위자료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부당이득으로 돌려 달라는 청구
피해자가 불법행위와 함께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기도 합니다. 타이베이 사건이 그랬습니다. 민법 제182조 제1항에 따르면, 법률상 원인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받은 사람은 받은 이익이 이미 남아 있지 않으면 반환이나 가액 상환 책임을 면합니다. 받을 때 알았거나 나중에 알게 된 사람은 제2항에 따라 받을 때 얻은 이익이나 알게 된 때 남은 이익에 이자를 붙여 돌려주어야 하고, 손해가 있으면 배상도 해야 합니다. 타이베이 항소부는 제공자가 사기를 몰랐고 돈은 들어오자마자 인출되어 알게 된 때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며 제1항을 적용했습니다.
몇 년 뒤에 온 소장과 시효
신베이 사건의 송금은 2020년 10월, 소송은 2024년이었습니다. 민법 제197조 제1항은 피해자가 손해와 배상의무자를 안 때부터 2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청구권이 소멸하고, 불법행위가 있은 때부터 1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라고 정합니다. 신베이 항소부는 '안다'를 실제로 안 것으로 봤습니다. 피해자는 2021~2022년에도 소포의 행방을 계속 물었고, 송금 신청서에는 영문 계좌명만 적혀 있었습니다. 경찰이 확인하기 전에는 피해자가 배상의무자를 알았다고 보기 어렵고, 명의인도 반대 증거를 내지 못했습니다. 시효 항변은 배척됐습니다.
대만 변호사에게 맡길 수 있는 일
대만 변호사에게는 받은 소장이나 민사부로 넘어온 부대민사 서류를 검토하고 경찰·검찰 기록과 불기소 처분서를 확보하는 일부터 맡길 수 있습니다. 구인 광고, 채팅 기록, 택배 영수증, 은행 통지로 당시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했는지 보여 주며 과실을 다투고, 실제로 내 계좌에 들어온 금액과 민법 제197조의 시효를 따지는 것도 변호사의 일입니다. 피해자 측과의 합의 협상, 민사법원이나 부대민사 절차의 대리, 형사사건이 진행 중일 때 형사 변호인과의 협력도 맡길 수 있습니다. 결과를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호정(昊鼎)국제법률사무소는 이메일 wei@hoveringlaw.com.tw로 상담 문의를 받습니다. 사무소 주소는 臺北市大同區承德路一段35號7樓之2입니다. 받은 소장과 카드를 넘긴 날짜, 불기소 처분서가 있다면 그 사본을 함께 보내 주세요.
참고한 공식 자료
- 대만 민법 제182조, 제184조, 제185조, 제197조, 제273조 (대만 법무부 전국법규데이터베이스, 현행 조문)
- 대만 형사소송법 제487조 (대만 법무부 전국법규데이터베이스, 현행 조문)
- 대만고등법원 타이난분원 112年度金簡易字第108號 민사판결, 2024년 5월 29일, 2024년 6월 26일
- 대만 신베이지방법원 113年度簡上字第499號 민사판결, 2025년 5월 20일
- 대만 타이베이지방법원 114年度簡上字第137號 민사판결, 2025년 7월 2일
확인일: 2026년 10월 19일
자주 묻는 질문
-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면 피해자의 민사 청구도 끝난 것 아닌가요?
-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대만 민법 [제184조](https://law.moj.gov.tw/LawClass/LawSingle.aspx?pcode=B0000001&flno=184) 제1항 앞부분은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의 권리를 불법하게 침해한 사람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웁니다. 신베이지방법원 항소부는 [2025년 5월 20일 판결](https://judgment.judicial.gov.tw/FJUD/data.aspx?ty=JD&id=PCDV%2c113%2c%e7%b0%a1%e4%b8%8a%2c499%2c20250520%2c1)에서, 불기소의 근거가 된 대화 기록은 고의가 없었다는 것만 보여 줄 뿐 과실까지 없다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며 계좌 명의인에게 10만 대만달러와 이자를 배상하게 했습니다. 불기소 뒤 민사에서도 책임이 부정된 [판결](https://judgment.judicial.gov.tw/FJUD/data.aspx?ty=JD&id=TNHV%2c112%2c%e9%87%91%e7%b0%a1%e6%98%93%2c108%2c20240529%2c2)이 있으니, 결론은 사건마다 사실관계에 따라 갈립니다.
- 제 계좌에 들어온 돈보다 큰 금액을 청구받았습니다. 전액을 물어야 하나요?
- 대만고등법원 타이난분원은 [2024년 6월 26일 판결](https://judgment.judicial.gov.tw/FJUD/data.aspx?ty=JD&id=TNHV%2c112%2c%e9%87%91%e7%b0%a1%e6%98%93%2c108%2c20240626%2c3)에서, 미필적 고의로 계좌를 제공했다고 인정한 명의인에게도 그 사람 계좌에 들어온 28,985대만달러에 한해서만 인출책과 연대 책임을 지웠습니다. 다른 사람 계좌로 들어간 돈은 이 명의인이 알고 도왔다는 증거가 없다며 책임을 부정했습니다. 그 사건의 사실관계에 따른 판단이므로 모든 사건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 몇 년 전에 넘긴 계좌 때문에 이제 와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나요?
- 민법 [제197조](https://law.moj.gov.tw/LawClass/LawSingle.aspx?pcode=B0000001&flno=197) 제1항에 따르면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와 배상의무자를 안 때부터 2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하고, 불법행위가 있었던 때부터 10년이 지나도 소멸합니다. [신베이지방법원 항소부](https://judgment.judicial.gov.tw/FJUD/data.aspx?ty=JD&id=PCDV%2c113%2c%e7%b0%a1%e4%b8%8a%2c499%2c20250520%2c1)는 '안다'를 실제로 안 것으로 보고,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한 2022년 10월 20일 전에 손해와 명의인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다며 시효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